[ 레스터 빌 Lester Beall ]


광고 제작자와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두 분야 모두에서 국제적인 인식을 얻은 레스터 토마스 빌. 자신의 개성이 뚜렷하며 간결성을 돋보이게 했던 레스터 빌의 인쇄술을 미국과 해외에서는 모두 칭송했다. 그는 주로 대담한 원색과 화살표, 그리고 선을 사용하며 자신의 작품을 표현했는데- 동시에 그래픽 스타일 또한 자기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생애>


레스터 토마스 빌은 미주리의 캔자스 시티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곧 미주리의 루이스 길가로 이사했으며 이후에 또 한번 일리노이의 시카고로 이주했다. 시카고의 대학에서 공부했던 그는 대학의 아모스 알론조 스태그 감독이 이끄는 대표 트랙 팀에서 활약을 했다. 더불어 시카고 예술 학교에서도 공부하기도 했던 그는 시카고에서 실험적이고 전문적인 일을 맡게 된다.

WPA poster, 1930s

루즈벨트 대통령 임기 기간에 미국은 1929년 이래 몰아닥친 대공황으로 인해 천 수백만에 달하는 실업자들이 나오고 있었다. 당시 레스터 빌은 WPA: Works Progress Administration 이라는 일 증진 캠페인으로 실직자들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증진시켜주는 포스터를 제작했다.

특히 그는 1930년대와 40년대 동안 고객을 위해 혁신적이고 굉장히 존경받는 작품제작을 진행해왔는데- 크로웰 출판사의 Colliers 잡지를 위해 작업하기도 했다. 책을 판촉하기 위해 디자인한 커버에서 "전쟁이 있을 것이다.(Will There Be War?)"와 "히틀러의 악몽"은 그 시대 전반의 메세지를 하나로 응축한 강력하고 획기적인 좋은 디자인이었다. 이 작품에서 그는 1930년대 후반 자신의 개인적 스타일을 파악하게 된다. 아이콘과 화살표, 윤곽 사진 및 동적인 모양을 사용한 것이다.

Here it comes / Rural Electrification Administration, 1930s
When I Think Back&amp;nbsp;/ Rural Electrification Administration, 1930s

 

Things Look Better&amp;nbsp;/ Rural Electrification Administration, 1930s

Rural Electrification Administration, 1937
It's Fine For Us / Rural Electrification Administration, 1939

또한 이 기간에 미국 정부 활동의 일련이었던 시골 충전 관리라는 포스터(농촌 전기화 계획 포스터 시리즈)를 제작하게 된다. 자유롭고 가장 미국적이며- 근대적인 창의성이 처음으로 나타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포스터에서 원색으로 그어진 직선과 간결한 설명으로 레스터의 스타일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데 다시말하면, 화려했던 아르데코보다 순수주의에 가까웠다. 장식이나 과장을 거부하는 짧고 간결한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데- 레스터 빌의 이러한 특징들은 초현실주의나 구성주의 및 다다이즘, 그리고 순수주의에서 영감을 받았다. 직선, 화살표, 라인 등 간결한 디자인과 가장 적은 단어로 많은 의미를 전달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포토 몽타주 기법을 종종 사용했는데, 30년대에 헤르베르트 바이어와 같은 유럽의 아방가르드 디자이너와 함께 실험적인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포토그래피는 그의 평생의 관심거리이자 창작의 원료였기 때문이다. 시카고에서 디자인할 때 주로 사진으로 실험을 했으며 그의 작품은 시각적으로 혁신적인 이미지로 평가된다.

1930년대부터 40년대까지 그는 광고제작과 그래픽 디자인 두 분야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말년에는 뉴욕의 시골로 이사를 가서 자신의 사무실을 설립하고 가정을 옮기며- Dumbarton Farm(덤 바턴 농장)이라는 농장을 만들었다. 1969년 그 농장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현대 그래픽 디자인 발전에 큰 공헌을 하신 분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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