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튼 글레이저 Milton Glaser : 천재적인 디자이너 : I ❤︎NY More Than Ever
[ 밀튼 글레이저
Milton Glaser 1929 - 2020]
밀튼 글레이저는 그의 이름으로 어느 한 장르를 규정지을 수 없을 만큼 다방면에 다작을 남긴 천재적인 디자이너다. 1951년 쿠퍼 유니언을 졸업한 밀턴 글레이저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볼로냐로 유학하여 조르지오 모란디(Giorgio morandi)에게 에칭을 배웠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1954년에 시모어 쿼스트(Seymour Chwast), 레이놀즈 러스핀(Reynold Ruffins) 그리고 에드워드 소렐(Edward Sorel)과 함께 푸시핀 스튜디오(Push pin studio)를 설립했다. 러스핀과 소렐은 얼마 후 푸시핀을 떠나 각자의 길을 가고 글레이저와 크와스트는 20여년간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며 미국 그래픽 디자인 역사에 남을만한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 푸시핀 스튜디오 (Push Pin Studio) ]
1950년대 중반 뉴욕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스튜디오 중 하나이다. 견고하고 경직된 느낌의 스위스 양식에 대한 대안으로서 젊고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미국의 그래픽 분야에서 처음으로 포스트 모더니즘 경향의 접근을 시도한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푸시핀 스튜디오는 빅토리아 시대의 타이포그래피와 목판활자, 혹은 아르누보 풍의 장식적 요소 등 흔히 시대의 취향에 뒤쳐졌다고 평가되는 시각적 진부함을 연구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을 첫째 목표로 삼았다 .결국 이러한 구시대의 시각적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되살려 적용한 그들의 디자인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스위스 양식과 크게 대조를 이루면서 사람들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당시 시모어는 목판과 모노 프린트, 드로잉, 소렐은 추상적인 형상, 밀튼은 정교한 펜으로 음각 스타일의 드로잉을 잘 그렸다. 모두 장식적이긴 했으나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기존의 일러스트레이션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들은 푸시핀 알마넥을 푸시핀 그래픽으로 이름을 바꾸어 출간했는데 여기에서 그런 스타일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푸시핀은 과거에서 양식을 빌려오기 시작했고 빅토리아-아르누보-아르데코에 이르기까지 탐욕스럽게 소화하기 시작했다. 시모어는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다. 어떤 양식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고상함이나 현대성을 상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개념적인 일러스트레이션, 과장된 형퇴, 의외의 유머 등으로 푸시핀 스타일의 특징을 만들어내며 책표지와 음반 디자인, 포스터와 잡지, CI 디자인과 패키지 디자인, 그리고 인테리어와 전시 디자인까지 다양한 활동을 펼쳐 나갔다. 더불어 당시 이들의 스타일은 다른 일러스트레이터와 디자이너에 의해 복제되어 유행했다. 푸시핀이 성공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독창적인 창의력이었던 것이다.
1970년대 루브르 박물관에서 푸시핀 멤버의 회고전이 열렸다. 디자인 스튜디오로는 전무후무한 이 전시 이후 사람들은 강조된 컬러 감각과 평면적 형상의 활용이 특징인 푸시핀 스타일은 언급했으며- 푸시핀 등의 단어가 유행했다. 그러나 스튜디오가 너무 유명하게 되자 밀튼은 부담을 느끼고 독립을 선언한다. 푸시핀은 온수 설비가 없던 아파트에서 현대적인 사무실로 이사하던 날 에드워드 소렐이 먼저 그만뒀다. 결국 푸시핀에는 시모어만 남았고, 후배 작가들과 함께 지금도 굳건하게 스튜디오를 지키고 있다.
무쪼록.. 1960년대에 범람했던 국제 타이포그래피 스타일에 도전하며 대중들과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위트있는 디자인을 하는 등- 르네상스 회화부터 아르누보 스타일까지 역사적인 요소들을 자유롭게 결합시키며 새로운 형태로 재창조한 점은 내가 본받고 싶은 점이기도 하다. 또한, 디자이너란 직업을 시민사회와 구별되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에 속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고 그 점을 나 또한 잊지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밀턴 글레이저 Work ]
글레이저는 30여년간 300여개가 넘는 포스터를 작업했는데, 그 중에는 밥 딜런의 포스터도 포함되어있다. 딜런의 옆모습이 검정색 실루엣으로 처리되고 머리카락은 페르시아 풍의 밝은 패턴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 포스터는 미국의 그래픽적인 아이콘으로 남았다.
한편, 9.11 테러 이후 토종 뉴요커이기도 한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I ❤︎NY 로고를 다시 디자인하여 (I Love NY More Than Ever)라는 포스터를 제작하게 된다. 특히 이 포스터는 그래픽 디자인의 아이콘이 되어, 뉴욕 도시 정체성을 강화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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