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어트리스 워드 Beatrice Warde ] 

 

<황금잔과 유리잔>

 

"눈 앞에 좋은 와인 한 병과 두 개의 잔이 있다. 하나는 호사스럽게 장식된 황금잔이고- 또 하나는 수수하고 투명한 유리잔이다. 아무거나 골라 와인을 따라보자. 어떤 잔을 고르냐에 따라 와인에 대한 조예가 판가름 날 것이다. 와인을 모르는자, 즉 와인의 색, 향과 맛에 관심이 없는 자라면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황금잔을 선택할 것이다. 반대쪽 와인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자라면, 내용물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투명한 유리잔을 선택할 것이다."

이 은유를 창시한 비어트리스 워드(Beatrice Warde)는 1900년 9월 20일 미국 출생의 타이포그래피 연구 이론가, 역사가, 비평가 및 교육자였다. 호레이스 맨 학교와 버나드 칼리지 대학에서 공부한 그녀는 1925년 프레드릭 워드와 결혼하고 유럽으로 이주하게 된다. 영국의 중요한 타이포그래피 저본 <플러런>에 폴 부종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고- 거기에서 얻은 평판에 힘입어 1927년에는 <모노타입 리코더>지의 편집장에 임명되었으며, 명쾌하고 재치있는 비평은 남성 중심적인 영국 타이포그래피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글월로 발표된 비평도 그렇지만, 그녀의 지성은 오히려 말을 할 때- 즉 아무런 준비없이 연설을 할 때 더욱 빛을 발했다고 한다. 아무리 즉흥적으로 마련된 자리라 해도 40분 정도는 청중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었다니 말이다.

 

모더니즘은 건축과 일상용품에만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픽 디자인에서도 독자들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타이포그래피의 모더니즘이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1932년 런던에서 "타이포그래피는 유리잔과 같아야 한다"는 주제로 강의를 한 그녀의 명제는 유리잔이 그 속에 담긴 와인의 아름다운 색과 맛을 잘 드러내기 위해 투명해져야 하는 것처럼 타이포그래피 역시 장식적이어서도- 내용보다 형식이 먼저 눈에 들어오게 해서도 안 된다는 의미다. 

19c 말 유럽의 타이포그래피가 객관성과 명료성보다는 주관성과 표현성을 중시하는 아르누보의 지배를 받았다면- 20c의 타이포그래피는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독자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데 충실할 것을 요구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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