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분리파 ]

 

1897년 구스타프 클림트를 주축으로 낡고 판에 박힌 사상에 더이상 의존하지 않고- 미술과 삶의 상호교류를 통해(인간의 내면적 의미를 미술을 통해) '전달하고자'하는 목적으로 결성된 예술가 집단이다. 

 

빈 분리파 혹은 비엔나 분리파라고도 불리운다. '분리하다'의 뜻인 라틴어 동사 'secedo'를 어원으로 하는 이 명칭은 아카데미즘이나 관 주도의 전시회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한다. 즉, 기존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과거의 전통에서 분리되어 자유로운 표현활동을 목표를 한 미술가들이 자신들의 전람회를 기획하고 조직하기 위해서 창립한 새로운 예술가 집단인 것이다. 

 

간행물<성스러운 봄> : '베르 사크룸(ver sacrum)'으로 불리우는 최초의 그래픽 잡지

 

1897년 4월 3일 초대회장으로 클림트를 내세워,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공예가인 콜로먼 모저 - 건축가 오토 바그너와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 등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빈 분리파는 1898년 1월, 간행물<성스러운 봄>을 창간하고 3월에 첫 전시회를 개최했다. 또한 동일 해에, 올브리히가 디자인한 빈 분리파 전시관을 개관했다.

젊고 재능있는 화가들을 발굴하여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일본 미술전, 인상파 미술전 등을 통해 훌륭한 외국 작품을 소개하여 오스트리아에 새로운 예술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특히 1902년에 개최된 제 14회 빈 분리파전에는 약 5만 8천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면서 빈 분리파의 위상을 실감토록 하였다.

 

요제프 호프만이 내부 디자인을 맡은 이 전시에서 클림트는 <베토벤 프리즈>를 통해 응용미술의 극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빈 분리파에는 특정한 예술개념이나 양식은 없었으나- 빈 분리파 전시관 입구에 새겨진 '각 세기마다 고유한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문구에서 이들이 추구한 이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아카데미의 오랜 역사와 전통의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했다. 따라서 예술 경향과 국적을 초월하였으며 전위미술에도 상당히 우호적이다.

 

[ 전위 미술 : 일반적 전통 예술에 반항하거나 대립하려고한 20c 초의 혁신적이고 혁명적인 새로운 정신과 그 작품 행위 내지 운동 ]

당초 인상주의와 아르부노의 영향을 받은 회화/운동에서 출발한 빈 분리파의 성과는 오히려 현대건축과 공예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으며- 모든 건축에서 실용성과 상징주의의 조화를 추구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주거와 미학을 결합시킨 총체미술을 창출하고자 하였다.)

 

또한,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을 통합함으로써 근대적인 국제주의 미술과 디자인이란 개념을 주창했다. 회화에서는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 칼 몰, 리하르트 게르스틀 등이 이에 속하는 작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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