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포스터의 아버지 : 툴루즈 로트렉 (Henri de Toulouse-Lautrec)
[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
Henri de Toulouse-Lautrec ]
벨 에포크 시대의 프랑스 파리는 문화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풍요를 누리던 시기였다. 당시, 툴루즈 로트렉은 가까운 거리에서 대도시 밤 문화(무용과 쇼를 감상하며 음주 및 식사를 즐기는 카바레, 뮤직홀, 사창가 등)를 그래픽화한 것으로 잘 알려진 화가다. 유명한 귀족 출신인 틀루즈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유복했으나 어렸을때부터 마음고생이 심했다.
선천적으로 뼈가 약하기도 했지만, 14세와 15세에 좌우 허벅지 뼈가 부러지면서 다리의 성장에 장애를 갖게 된 것이다. 결국 약 152cm 키의 단신에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야 할 정도로 신체적 결함이 있었다. 엎친데 덮친격, 아버지 툴루즈 로트렉 백작은 장애가 있는 자신의 아들에게 눈꼽만큼 애정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치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로트렉의 삶은 외부활동에 제약을 받게되고- 그는 자연스레 치료과정의 일부였던 그림에 몰두하게 된다.
예술 활동 중에서도 특히 포스터로 유명한 그는 외곽선을 사용했는데 실제, 이전에 포스팅한 오브리 비어즐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유화 뿐만 아니라 수채 - 석판 - 파스텔 등에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담아 독특한 스타일을 창시한 그는 고흐와 교류하는 등, 후기 인상주의 예술가들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파리의 카바레, 물랑루즈의 포스터를 제작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도시 하층 계급 여성들을 그림으로써 자신의 신체적 장애와 소외받은 아픔을 달래기도 했다.
그의 삶에 큰 위로가 되어준 것은 그림 뿐만이 아니었다. 독한 폭음과 방탕을 즐겨하던 그는 결국. 건강을 빠르게 해치게 되며 만 36세로 요절하게 되지만- 추후 그가 태어난 남프랑스의 알비(Albi)에서는 툴루즈 로트렉을 기리는 미술관이 창립되었다.
짧은 생애동안 무려 약 5천여 점의 작품을 남겼으며- 그 중, 31점은 포스터 작품이다. 이전에는 순수미술에 대한 접근성이 쉬운 편이 아니었지만- 미술작품이 대중에게 소비되고 활용됨에 따라 많은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등 현대 미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그는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 라고도 불리운다.
'Design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스타프 클림트 : 키스 /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Gustav Klimt) (0) | 2022.03.14 |
---|---|
빈 분리파 : 미술과 삶의 상호교류 (0) | 2022.03.13 |
쥘 세레 (Jules Chéret) : 벨에포크 시대 최고 포스터 예술가 (0) | 2022.03.10 |
오브리 비어즐리 (Aubrey Beardsley) : 아더왕의 죽음, 옐로북, 사보이 / 탐미운동 (0) | 2022.03.09 |
아르누보의 선구자, 외젠 그라세 / 그라세체 (0) | 2022.03.08 |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구스타프 클림트 : 키스 /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Gustav Klimt)
구스타프 클림트 : 키스 /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Gustav Klimt)
2022.03.14 -
빈 분리파 : 미술과 삶의 상호교류
빈 분리파 : 미술과 삶의 상호교류
2022.03.13 -
쥘 세레 (Jules Chéret) : 벨에포크 시대 최고 포스터 예술가
쥘 세레 (Jules Chéret) : 벨에포크 시대 최고 포스터 예술가
2022.03.10 -
오브리 비어즐리 (Aubrey Beardsley) : 아더왕의 죽음, 옐로북, 사보이 / 탐미운동
오브리 비어즐리 (Aubrey Beardsley) : 아더왕의 죽음, 옐로북, 사보이 / 탐미운동
2022.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