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반 뒤스부르크 (Theo Van Doesburg) : 데스틸의 창시자이자 리더
[ 테오 반 뒤스부르크
Theo Van Doesburg 1883 - 1931 ]
1883년 8월 30일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테오 반 뒤스부르크는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그리고 화가시다. 그가 첫 전시회를 가지던 해는 1908년이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인상 주의 화가로서 참여했으나 1914년 서른 한세가 되던 해에 간딘스의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를 읽고 추상미술로 전환하게 된다. 마음보다 일상 생활에서 비롯된 추상화의 논리적 결과가 그림의 더 높은 영적 레벨이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1917년, 군대에 갔다온 이후 잡지사에서 일을 하는 동안 그는 우연히 몬드리안의 작품을 보게 된다. 그때까지 작업했던 자신의 그림 중 추상적인 특징 몇가지를 주목하게 되며- 박람회 직후 몬드리안과 접촉하여 자신들과 유사한 이념을 가진 아티스트(바르트 반 데르 레크, 안토니 콕 등)들과 함께 데스틸을 창간한다.
1922년, 데스틸이 많은 회원들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 뒤스부르크는 "외교" 역할을 담당하며 유럽에서 증진활동을 주도했으며, 바이마르에 활동영역을 넓히고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바우하우스로 간다.
바우하우스를 세운 교장 그로피우스가 역임하는 동안 뒤스부르크가 그 다음을 이어갈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고 하지만, 구성주의 - 다다이즘 등 데스틸의 이념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을 끌어 모으는 학교로 이끌어나가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그런데 1923년, 몬드리안과의 다른 시점의 차이로 인해 아내와 함께 파리로 떠났다. (몬드리안이 내향적이었다면, 뒤스부르크는 더 화려한 것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1924년에는 결국 몬드리안과 논쟁에 이르게 된다. 토론의 주요 이슈는 선에 관한 것이었는데- 몬드리안이 절~~대 대각선을 허용하지 않는 반면 뒤스부르크는 대각선의 역동적인 측면에 대한 고집이 있었다.
1929년, 두 사람은 의견과 성향의 차이 대립을 해결하지 못한 채 파리를 마지막으로 헤어졌으나- 뒤스부르크는 데스틸 활동 외에도 다양한 활동들을 시도했다. 예를 들어, 그는 예술가들을 위한 주택 건축 설계에 힘썼으며- 조르주 반통겔루(벨기에의 화가이자 조각가)와 함께 오베트의 장식을 설계했다. 또한, 뒤셀도르프와 바이마르에서 1922년, 미술의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당시 그가 만든 활자는 쿠르트 슈비터스(독일 출신, 다다이즘 화가이자 판화/조각가)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후 스위스의 활자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러 예술 단체에서 활동을 하던 중 안타깝게도 건강문제로 스위스로 옮겨졌고 31년이 되던 해(47세), 다보스에서 사망했으나- 후대의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영감과 본보기가 되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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