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터 베렌스

Peter Behrens 1868-1940 ]

 

건축가이자 산업디자이너 겸 그래픽 디자이너, 타이포그래퍼이신 페터 베렌스는 모더니즘의 선구자로써 현재까지 독일의 디자인을 발전시킨 중요 인물이다.

 

기업의 성공을 위해선 무엇보다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기업의 이미지를 통합적으로 디자인할 것)하며 현재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최초로 구축했다. 

 

AEG Logo
AEG electric water kettle, 1909

AEG Assembly hall for large machines, Berlin-Gesundbrunnen, 1912

"기업에 있어 디자인은 미술과 산업의 불가분한 경합일 뿐 아니라 제품과 기업을 상징하는 일차원적 의미이다."라고 정의했다. 페터 베렌스는 독일의 유명한 전기 회사인 아에게(AEG)의 로고와 제품, 그리고 건축 디자인 등 모든 디자인 분야를 총괄하면서 그 주장을 실현해왔으며- AEG 로고를 활용하여 기업의 건물 서식류 - 제품 - 그래픽 물에 계속적으로 적용시키면서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통일하고자 했다. 

 

그의 제품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등은 아르누보 - 빈 분리파의 화려한 장식 이후 독일 모더니즘의 기능적 명료함 사이에 다리를 놓은 역할을 한 것이다.

 

Door of Behrens’ Darmstadt House, 1901
The Technical Administration Building of Hoechst, 1924
The Technical Administration Building of Hoechst, 1924

 

반면, 그의 초기작들을 보면 아르누보 스타일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르누보는 지나치게 사치스러웠고 환상적이며- 심지어 나태하고 쾌락적이기까지 한 과잉 장식으로 인해 대중적이지 못했다. 일시적 취미와 같은 운동으로 보인 나머지 이 과도기적 시대에 베렌스는 변화를 겪게 된다.

 

1900년대부터 대량생산이 본격화되면서 기계미학에 대해 인식이 폭넓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공업 활동으로 생산되는 물건은 미학적 가치가 무엇보다 합리적인 가치여야 하며- 장식에 치중해 있던 유럽의 디자인 개념은 유용한 목적에 맞는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대량생산 기술과 제품의 기능에 의해서 결정되는 기하학적이고 검소하여 아르누보보다 훨씬 장식이 배제된 순수한, 합리적 형태로서 제품의 질적 수준을 높이려는 기능주의가 대두하게 되었다. 이때 나타난 것이 독일공작연맹(베르크분트)다.

장식적이고 독창적인 물건 제작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한 조형을 찾는 의식이 1906년 드레스덴 국제 박람회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 의식의 주된 이론가로 헤르만 무테지우스가 있다. 그는 시대에 뒤떨어진 디자인에 통감하고 실제기능주의를 강조하며 찬반양론이 분분한 상황에서 예술가 - 건축가 - 문학가 - 제조업자 등으로 구성된 "독일공작연맹"을 창립한 주도 인물이다.

 

어찌보면, 미술 - 공예 - 상업 - 공업 분야에서 최고의 지혜를 결집하여 제품의 질을 높이는데 목적을 둔 디자인 진흥 기관인 셈이다. 독일공작연맹의 중심인물로 손꼽히는 페터 베렌스 역시 미술공예운동 이념을 수용하면서도, 대량생산에 따른 근대문명 표현을 위한 현대적 시각언어를 추구하는 독일공작연맹에 속한다. 

 

"심미적 질서에 부합하는 실용적 물건의 대량생산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다."

 

 

[ 그 외 페터 베렌스 work ]

New Ways art deco house in Northampton, Northamptonshire, 1920s / 출처 : WowH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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