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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몬드리안 Piet Mondrian :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선구자
피에르 몬드리안 Piet Mondrian :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선구자
2022.03.24[ 피에르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 - 1944 ] 피에르 몬드리안은 네덜란드 출생의 서양화가 겸 신 조형주의 작가이다. 1892년 20살이 되던 해, 암스트레담 국립 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 집안의 의견에 따른 교사가 아닌 화가의 길을 결심한다. 몬드리안이 학교를 다니던 당시엔 사실주의가 유행했는데- 그의 초기작 역시 자연의 풍경과 정물과 관련된 화풍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곧 큐비즘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순수 조형위주의 스타일로 전향하게 된다.인상파와 야수파 등 다양한 화파들의 그림을 연구하는 도중 1908년, 마티스에 감명을 받아 순수한 색채로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10년, 그는 얀 슬뤼터스, 얀 루토프 등과 함께 모던 아트 그룹에 참여한다. 몬드리안은 입체파의 방법론을 ..
페터 베렌스 : 모더니즘의 선구자 (Peter Behrens)
페터 베렌스 : 모더니즘의 선구자 (Peter Behrens)
2022.03.23[ 페터 베렌스Peter Behrens 1868-1940 ] 건축가이자 산업디자이너 겸 그래픽 디자이너, 타이포그래퍼이신 페터 베렌스는 모더니즘의 선구자로써 현재까지 독일의 디자인을 발전시킨 중요 인물이다. 기업의 성공을 위해선 무엇보다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기업의 이미지를 통합적으로 디자인할 것)하며 현재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최초로 구축했다. "기업에 있어 디자인은 미술과 산업의 불가분한 경합일 뿐 아니라 제품과 기업을 상징하는 일차원적 의미이다."라고 정의했다. 페터 베렌스는 독일의 유명한 전기 회사인 아에게(AEG)의 로고와 제품, 그리고 건축 디자인 등 모든 디자인 분야를 총괄하면서 그 주장을 실현해왔으며- AEG 로고를 활용하여 기업의 건물 서식류 - 제품 - 그래픽 물에..
헤르만 무테지우스 (Hermann Muthesius) : 양질의 규격화로 기계화를 긍정하라
헤르만 무테지우스 (Hermann Muthesius) : 양질의 규격화로 기계화를 긍정하라
2022.03.22[ 헤르만 무테지우스Hermann Muthesius 1861-1927 ] " 양질의 규격화로 기계화를 긍정해라. " 독일의 건축가이자 건축행정가이신 헤르만 무테지우스는 양질의 규격화된 형태로서의 대량생산을 추구했으며 산업디자인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무엇보다 영국의 합리적인 주택 건축이나 명쾌한 공예품 생산에 감동을 받은 그는 강연과 논문을 통해 독일 공예계에 미술의 실생활화 및 기계생산품의 미적 규격화등을 주장한다. 특히 생활 속에 미술을 도입하자는 사상은 영국의 시인이며 공예 미술가이자 건축가이신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에서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기능적인 사고방식을 중심으로 한 조형 세계를 주장한다. 예술 - 공업 - 수공예의 협력에 의한 제품 향상을 목적으로 디자인 진흥기관 또한 결..
독일공작연맹 Deutscher Werkbund : 미술과 산업의 협력
독일공작연맹 Deutscher Werkbund : 미술과 산업의 협력
2022.03.21[ 독일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 ] 독일 공작연맹은 1907년 독일의 건축가 '헤르만 무테지우스'에 의해 선립된 운동이다. 미술과 산업의 협력에 의해 공업 제품의 질을 높이고 규격화를 목적으로 결성되었으며 운동의 이념 및 목적을 세가지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적극적으로 기계를 도입2. 미술의 실생활화3. 기계생산품의 미적 규격화 [ 독일공작연맹의 영향 ] 1. 디자인에 관련된 많은 성과의 흐름을 하나로 통합하고, 20세기적 시점에서 근대적인 흐름을 이끌어 내는 합류점이 되어 디자인 동향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2. 20세기 초 독일의 산업과 경제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선진 강대국으로 발전시킨 사회운동, 문화운동 - 더 나아가 산업화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3. 기능..
독일 중상층의 영웅, 루트비히 홀바인 (Ludwig Hohlwein)
독일 중상층의 영웅, 루트비히 홀바인 (Ludwig Hohlwein)
2022.03.20[ 루트비히 홀바인 ] 제 1차, 2차 세계대전 사이에 독일에서 인쇄된 가장 성공적이며 인기높은 포스터를 만드신 분이시다. 전통적 회화기법을 놀랍도록 혁신적으로 적용한 루트비히 홀바인의 작품은 독일 부르주아 계층의 정서에 잘 맞았다. 뉴 타이포그래피와 러시아 구성주의 등의 모더니즘 운동으로 귀결되는 디자인의 변혁을 예견한 루시안 베른하르트와 달리, 뮌헨의 한 부유한 중산층에서 태어난 홀바인은 자신의 현 상태를 지속하고픈 욕망 속에서 영감을 찾는다. 그는 베가스타프 브라더스의 영향을 받았으나- 포스터에서 설명적 요소를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때문에, 홀바인의 작품은 소극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전형적인 회화에 가까운 그의 작품에선 입체주의의 콜라주기법과 초현실적인 느낌 또한 찾아 볼 수 있는데- 포스..
오브젝트 포스터의 왕 : 루시안 베른하르트(Lucian Bernhard) / 자크플라카트 양식(Sachplakat)
오브젝트 포스터의 왕 : 루시안 베른하르트(Lucian Bernhard) / 자크플라카트 양식(Sachplakat)
2022.03.19[ 자크플라카트 양식Sachplakat ] 1900년부터 제 1차 세계대전 사이에 독일에서는 베가스타프의 세련되고 힘찬 예술지상주의를 발전시킨 디자인이 소비제품의 선전에 이용되었다. 이미지를 선정대상물로 한정하고 단어를 상품명으로 국한시킨 것이다. [ 자크플라카트 양식을 최초로 선보인 오브젝트 포스터의 왕, '루시안 베른하르트' ]아르누보와 빈 분리파의 과도한 장식적 style을 없애고 제품과 브랜드를 알리는 직설적인 설명을 자제하면서- 베른하르트(Lucian Bernhard)는 일종의 '오브젝터 포스터'라는 장르를 처음으로 개척한다. '사실 기반의 포스터'라고도 불리우는 그의 작업은 과장된 구호와 옷을 걸치지 않은 여성들, 스토리적인 요소들을 과감히 버리고 포스터라는 매체에 중요하고 새로운 역할을 ..
찰스 레니 맥킨토시 : 힐 하우스 의자 / 글래스고 예술학교
찰스 레니 맥킨토시 : 힐 하우스 의자 / 글래스고 예술학교
2022.03.15[ 찰스 레니 매킨토시 Charles Rennie Mackintosh, 1868-1928 ] 찰스 레니 맥킨토시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태생으로 가구 디자이너, 수채화가, 건축가, 조각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었다. 그는 대체로 건물 평면만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세부 디테일, 가구 등을 함께 디자인함으로써 건축분야 뿐만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명성을 떨쳤다(: 단순하고 직선적이며 꽃이나 자연물 - 추상적인 선 - 그리고 순수한 기하학적 요소를 첨가하여 창, 가구 등을 장식했으며 등받이가 높은 의자를 최초로 만들어 가구 디자인 분야에 이름을 남긴 그는 모던디자인분야에서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Hill house chiar, Argyle chair, Argyle armchair, Ingram ch..
구스타프 클림트 : 키스 /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Gustav Klimt)
구스타프 클림트 : 키스 /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Gustav Klimt)
2022.03.14[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1862 - 1918 ] 앞서 포스팅한 빈 분리파 운동의 주요 회원으로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활동한, 아르누보 대표 화가이다. 14세에 빈 응용미술학교에 입학하면서 장식 회화가로 교육을 받은 그는 전통적인 사실적 화풍에도 재능이 있었으나, 장식과 독립된 작품활동을 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넓혀나간다. 19c 말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일어난 아방가르드 미술을 접한 이후엔- 상대적으로 낙후된 오스트리아 미술에 반발하는 운동, '빈 분리파'를 결성하게 된다. 사실, 구스타프 클림트하면 가장 먼저 작품 '키스'가 떠오른다. 어렸을 적, 가장 좋아하는 작품 다섯손가락 중 하나에 손꼽힐 만큼-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에 매료되곤 했었다. 뭐랄까. 단순히 붓과 물감으로 그림..
빈 분리파 : 미술과 삶의 상호교류
빈 분리파 : 미술과 삶의 상호교류
2022.03.13[ 빈 분리파 ] 1897년 구스타프 클림트를 주축으로 낡고 판에 박힌 사상에 더이상 의존하지 않고- 미술과 삶의 상호교류를 통해(인간의 내면적 의미를 미술을 통해) '전달하고자'하는 목적으로 결성된 예술가 집단이다. 빈 분리파 혹은 비엔나 분리파라고도 불리운다. '분리하다'의 뜻인 라틴어 동사 'secedo'를 어원으로 하는 이 명칭은 아카데미즘이나 관 주도의 전시회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한다. 즉, 기존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과거의 전통에서 분리되어 자유로운 표현활동을 목표를 한 미술가들이 자신들의 전람회를 기획하고 조직하기 위해서 창립한 새로운 예술가 집단인 것이다. 1897년 4월 3일 초대회장으로 클림트를 내세워,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공예가인 콜로먼 모저 - 건축가 오토 바그너와 요제프 마리아..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 : 툴루즈 로트렉 (Henri de Toulouse-Lautrec)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 : 툴루즈 로트렉 (Henri de Toulouse-Lautrec)
2022.03.11[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 벨 에포크 시대의 프랑스 파리는 문화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풍요를 누리던 시기였다. 당시, 툴루즈 로트렉은 가까운 거리에서 대도시 밤 문화(무용과 쇼를 감상하며 음주 및 식사를 즐기는 카바레, 뮤직홀, 사창가 등)를 그래픽화한 것으로 잘 알려진 화가다. 유명한 귀족 출신인 틀루즈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유복했으나 어렸을때부터 마음고생이 심했다. 선천적으로 뼈가 약하기도 했지만, 14세와 15세에 좌우 허벅지 뼈가 부러지면서 다리의 성장에 장애를 갖게 된 것이다. 결국 약 152cm 키의 단신에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야 할 정도로 신체적 결함이 있었다. 엎친데 덮친격, 아버지 툴루즈 로트렉 백작은 장애가 있는 자신의 아들에게 눈꼽만..
쥘 세레 (Jules Chéret) : 벨에포크 시대 최고 포스터 예술가
쥘 세레 (Jules Chéret) : 벨에포크 시대 최고 포스터 예술가
2022.03.10[ 쥘 세레 ] 프랑스 파리 출신, 석판화가 쥘 세레는 근대 포스터의 아버지라 불리울 정도로- 벨에포크 시대 최고 포스터 예술가시다. [ 벨 에포크 ] 벨 에포크는 '아름다운(좋은) 시절'이란 뜻으로, 보통 19c 말부터 제 1차 세계대전 전까지의 시대를 의미한다.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풍요와 평화를 누린 프랑스와 유럽 전반에- 문화와 예술이 번창하고 경제 역시 발전했다. 특히 파리에서는 대부분의 신사 숙녀들은 우아한 옷차림을 즐겨했는데- 수많은 예술가의 집합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다운 꽃의 파리를 형성했다. 벨 에포크의 대표적 상징으로는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 위치한 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대표 초콜릿 브랜드 가 있다. 쥘 세레는 가난한 기계공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렸을 적 ..
오브리 비어즐리 (Aubrey Beardsley) : 아더왕의 죽음, 옐로북, 사보이 / 탐미운동
오브리 비어즐리 (Aubrey Beardsley) : 아더왕의 죽음, 옐로북, 사보이 / 탐미운동
2022.03.09[ 오브리 비어즐리 (Aubrey Beardsley) ] 주로 블랙 잉크로 그림을 그리신 분으로, 영국의 삽화가이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와 일본 풍속화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아 비어즐리 특유의 섬세하고 장식적인 양식을 확립했다. 더불어 그로테스크하고 퇴폐적이며 에로틱한 점이 특징이다. 아름다우면서도 병적인 선묘와 흑백의 강렬한 대조로 표현되는 단순하고, 평면적인 형태 묘사는 퇴폐적 분위기로 가득찬 환상의 세계를 낳았다. 미를 숭배하는 탐미운동(Aesthetic Movement)을 이끈 한 분이기도 한데- 아름다움에 탐닉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사상(인간을 위한 예술이 아닌,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이 담긴 운동이다. 영국의 토마스 맬러리 경(Thomas Malory)..